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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스토리] 5

캐릭터 아이콘0퍄팟

본 유저수88

작성 시간202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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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을 타고 석상 안으로 내려간 그들을 맞이한 것은 거대한 동굴이었다.
땅에 발을 디딘 아리와 메르시는 먼저 주변을 살펴본 뒤, 치료와 휴식을 위해 자리를 잡았다.

"그나저나 엄청 큰 동굴이네요," 아리를 치료하던 메르시가 말했다.

"그러게요. 이 정도면 개미굴이 아니라 완전히 미궁 수준인데요."
주위를 둘러보던 아리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치료 끝났으니 한 번 걸어보세요."

메르시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아리는 발목을 움직여 보았다.

"확실히 좋아졌어요. 고마워요, 메르시."

아리가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하자, 메르시도 밝게 웃어 보였다.

"그럼 이제 이동해볼까요?" 아리가 짐을 챙기며 말했다.

"좋아요.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죠?"

아리는 잠시 망설였다.
"음... 우리가 받은 지도에도 정확한 위치는 나와 있지 않아서..."

무작정 움직였다가는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 거대한 미궁에서 길을 잃는다면, 조난은 시간문제였다.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 메르시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그런데 아리,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네? 뭐가요?"

"우리 주변이요. 너무 깨끗하잖아요."

"깨끗하다니요?"

"아까 골렘들이 집어넣었던 꽃들이 거의 없잖아요."

"아!"
메르시의 지적에 아리는 바닥을 둘러보았다. 메르시의 말처럼 주변의 꽃은 거의 없었다.
동굴 입구에서 바람에 날아갔다고 하기에는 그 수가 이상할 정도로 적었다.

"정말 그러네요. 마치 우리가 본 골렘이 넣었던 정도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리는 바닥에 흩어진 몇 송이의 꽃을 보며 의아해했다.

'분명 누군가, 아니면 무언가가 꽃을 옮긴 게 틀림없어.'

슥-슥-슥-

그때, 어딘가에서 나는 소리가 아리의 귀에 들어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아리는 즉시 메르시의 손을 잡고 근처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은 숨을 죽이며 소리의 정체를 기다렸다.

곧 모습을 드러낸 것은 초록빛 피부를 가진 외눈박이 괴물들이었다.

"저건... 커즈아이?"

아리와 메르시는 경계하며 괴물들을 지켜보았다. 도마뱀처럼 길쭉한 몸에 두 팔만 달린 이 생물들은 아까 두 사람이 있었던 자리에서 꽃들을 모으고 있었다.

'역시...'
아리는 이 동굴에서 꽃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이들 때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저들이 꽃을 옮기는 곳이 아마 저주받은 신전이겠죠?" 메르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럴 가능성이 높아보여요."
아리는 동의하며 커즈아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커즈아이들은 동굴 안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고, 아리와 메르시도 조심스럽게 그 뒤를 쫓았다. 약 30분 정도 지나자, 그들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하지만 커즈아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리, 저것 좀 보세요."
메르시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자, 커즈아이들이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설마... 저 구멍이 목적지인가요?"
절벽 중간에 좁은 구멍이 있었고, 커즈아이들은 그 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으음... 그렇게 보이네요..."
아리는 절벽 끝의 구멍을 바라보았다. 그녀들 또한 절벽을 오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는 저 구멍의 크기였다.
기껏해야 1m 남짓한 구멍의 크기는 기어들어가지 않는 이상 들어가는게 불가능해 보였고 만일 그 상태에서 적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반항 한 번 못해보고 당해버릴게 분명했다. 결국 은신 능력을 가진 아리가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조심해요, 아리."
메르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아리는 절벽을 타고 구멍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윽, 생각보다 훨씬 좁네.'

구멍은 예상보다 더 답답했다. 아리는 최대한 조용히 팔을 당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약 5분 정도 기어가자 공간이 조금씩 넓어지더니, 이내 또 다시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어디로 갔지?'
주변을 살피던 그녀는 자신의 바로 앞에 깊은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와!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네."
구덩이는 어두워서 깊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주변을 확인하다가, 숨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바로 앞에 커즈아이 한 마리가 벽을 타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커다란 외눈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고 찢어진 입이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리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은신 중이란 것도 잊은채, 커즈아이를 공격할 뻔 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커즈아이는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였고 구멍 아래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휴... 심장 멎는 줄 알았어.'

아리는 진정을 하고 다시 구멍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메르시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두 사람은 구멍을 통과해 아리가 발견했던 지점까지 도착했다.

"여기에요 메르시."
메르시가 고개를 끄덕이고 준비를 시작했다. 곧 두 사람은 어두운 구덩이 아래로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밧줄 끝을 지나 도달한 곳은 푸른빛이 감도는 동굴이었다.
햇빛은 전혀 닿지 않았지만, 벽면에 서린 광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동굴 전체를 감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신비로움을 살피던 중, 메르시가 아리를 불렀다.

"아리, 저기 커즈아이들이 보여요."

메르시가 가리키는 곳엔 커즈아이뿐 아니라 콜드아이까지 꽃을 들고 이동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몬스터들의 뒤를 조심스레 밟았고, 마침내 목적지로 보이는 낡고 부서진 신전의 입구를 발견했다.

그때, 신전 안에서 보라색 피부에 커다란 뿔과 송곳니가 달린 몬스터가 기어 나왔다.

"와일드 카고."

메르시는 몬스터를 바라보며 아리에게 작게 속삭였다.
와일드 카고는 커즈아이와 콜드아이들이 가져온 꽃을 흘끗 보더니, 이내 그들을 무참히 찢어발겼다.

"키에에에엑!"

커즈아이와 콜드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화가 풀리지 않은 와일드 카고는 이미 죽은 시체를 집요하게 물어뜯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흥분한 몬스터 한 마리 정도는 아리 혼자서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와일드 카고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재빠르게 몬스터 위로 뛰어올라 목을 베어 일격에 쓰러뜨렸다.

"들어가죠."

주변에 다른 기척이 없는지 확인한 아리는 메르시와 함께 신전 안쪽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내부는 바깥보다 훨씬 웅장했다. 정교한 아치 구조물과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원기둥이 눈에 띄었다.
부서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만들어 낸 장엄함은 감출 수 없었다.

아리와 메르시는 와일드 카고의 눈을 피해 구조물을 이리저리 살피며 신전 깊숙이 진입했다.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서자, 의식이라도 치른 듯한 제단이 보였고, 그 위에는 오래된 부적이 놓여 있었다.

"메르시, 저기 제단이 있어요."

아리의 말을 들은 메르시는 품에서 다른 부적을 꺼내어 제단 위 부적과 교체해 붙였다.

"휴... 이걸로 시험은 끝났네요. 고마워요, 아리."

메르시는 웃으며 아리에게 인사했고, 아리도 화답했다.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그럼 이제 돌아갈까요?"

두 사람은 들어왔던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순간,

끼이이이익... 쿵!

그들이 들어온 신전 방의 문이 굉음과 함께 닫혀버렸다.
놀란 두 사람은 급히 달려가 문을 밀어봤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편, 제단 안쪽에서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하! 오랜만에 보는 인간들이구나."

제단 뒤에서 거대한 형체의 몬스터 둘이 걸어나왔다.
두 발로 걷는 짐승형상의 모습과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 그리고 몸에는 갑옷을 두른 그들은
각각 푸른색 창과 초승달 모양의 칼날이 달린 무기를 들고 있었다.

"타우로마시스와 타우로스피어예요."
그 정체를 알아본 메르시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거 고대의 몬스터 아니었어요?"
아리가 되물었다. 

" 저도 그런줄 알았지만, 저 모습은 몬스터 도감에서 본 것과 일치해요 "

"끄응... 쉽게 끝낼 줄 알았더니."
전투 태세를 갖춘 두 사람을 보며, 타우로마시스가 입을 열었다.

"신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어린 모험가들이여."
그는 두 팔을 벌려 마치 환영인사라도 하듯 몸짓했지만, 아리와 메르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들을 본 타우로마시스가 아쉬운 듯 말했다.

"오랜만의 손님들이라 들떠버렸군. 너무 겁먹지는 말게나. 자네들은 아주 중요한 '손님'이니까."

"손님? 우리가?"
아리가 묻자, 몬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들은 우리 신, 마왕 '발록'님께 받칠 제물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 순순히 잡혀주게나. 가능하면 신선한 상태로 바치는 것이 좋으니까 말이다"

"쳇, 이럴 줄 알았지. 메르시, 도망쳐요!"
아리가 메르시를 불렀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메르시?"
아리가 다시 불렀지만, 메르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방금.. 발록이라고 했나요...?"

그 말을 듣자, 아리는 '아차' 싶었다.

"그래. 위대하신 마왕 발록님이 바로 우리가 모시는 신이지."
"그리고 너희들은 발록님의 부활에 쓰일 완벽한 산제물이다."

"감히...!"
분노가 치솟는 메르시를 아리가 간신히 말렸다.

"발록은 7년 전에 죽은 거 아니었나? 이미 죽은 신 따위 잊는 게 어때?"
아리가 도발하듯 말했다. 그런 아리에게 타우로마시스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7년 전이라... 용케도 아는군, 어린 모험가. 하지만 그건 단순히 너희 인간들이 말하는 '죽음'과는 달라.
발록님은 몬스터들의 사념으로 태어난 존재. 육신을 잃어도 영혼은 남아 부활할 날을 기다리시지."

"그런..."
충격을 받은 아리를 보며, 타우로마시스는 말을 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발록님은 인간들에게 매번 봉인당하셨지. 20년 전에도, 그리고 7년 전에도.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산제물이 두 명이나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부활하신 발록님이 세상을 피로 물들이실 거다."

"도대체 왜... 그런 위험한 존재를 없애지 않고 봉인만 한 거죠?"
뒤에서 듣고 있던 메르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말했지 않느냐. 발록님은 육신을 잃어도 영혼은 남는다고, 그 때문에 너희 인간들은 완전히 소멸시키는건 포기하고
이 부적을 이용해 발록님의 부활을 이 곳으로 제한하기로 한 거지. 언젠가 부활할 발록님을 대비하려고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타우로마시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이상하군. 너희는 보아하니 상위 모험가도 아닌데 어째서 이곳에 온 거냐?"

"그건 네가 알 바 아니잖아."
아리가 내뱉자, 타우로마시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건방진 인간 놈들..."

그러다 문득 타우로마시스는 발밑의 제단을 살피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설마 몇 십년만에 방문한 인간이 사제였다니! 
이건 신이 우리를 돕는 게 분명하구나! 크하하핫!"

"어우, 시끄러. 혼자만 알아들을 말은 그만하지 그래?"
아리가 비꼬듯 말하자, 타우로마시스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크크큭... 너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 찾아온 모양이군.
저 제단에 붙은 부적은 발록님의 영혼을 묶어두고, 부활 장소를 이곳으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뭔데?"
아리가 다그치자, 타우로마시스는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부적을 제거할 수 있는 건 오직 여신교의 사제뿐이라는 거다."

"뭐라고?!"
아리와 메르시는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봤다.

"계획 변경이다. 여기서 바로 발록님의 봉인을 깨워야겠군."
타우로마시스가 창을 들어올리며 비웃었다.

"얌전히 있으면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 저항하지 마라."

"헹! 누가 너희 뜻대로 될 줄 알았어!"
아리는 재빨리 플래시 뱅을 던져 몬스터들의 시야를 교란했다.

"메르시! 내 손 잡아요!"

메르시가 아리의 손을 붙잡자, 아리는 주머니에서 마을 귀환 주문서를 꺼냈다.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어... 어째서?"
절망한 그녀는 다가오는 창을 인지하지 못했다.

"홀리 매직 쉘!"

챙—!
메르시가 순식간에 방어막을 펼쳐 타우로마시스의 공격을 받아냈다.

"제법이군, 어린 사제."

타우로마시스는 이번에도 비웃듯 중얼거렸다.

“아오... 왜 이게 작동이 안 되는 거야.”

아리는 서둘러 마을 귀환 주문서를 다시 펼쳐보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기서 주문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타우로마시스가 그런 그녀를 보며 느릿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부적을 제거하려는 멍청한 모험가를 대비해, 너희 여신교 놈들이 이곳에 주문서 방해 결계를 쳐 놨지. 그러니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발록 님의 부활에 필요한 제물이 되어라.”

“싫다니까 더럽게 끈질기네!”

아리는 다시 한 번 플래시 뱅을 터트렸다.

“크윽! 이 빌어먹을 모험가놈이!”
분노한 타우로마시스가 앞을 찌르려 했지만, 이미 그 자리에 아리와 메르시는 없었다.

타다다닥!

자신들의 뒤쪽에서 달리는 소리가 들리자, 타우로마시스가 뒤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이미 신전 복도를 따라 도망치는 아리와 메르시의 모습이 보였다.

“어딜 도망치려고 하는 거냐!”

타우로마시스도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막다른 길로 몰린 듯 보이는 아리와 메르시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크큭... 결국 포기했나? 걱정 말라, 어린 인간들아. 고통 없이 보내주마.”
타우로마시스가 비웃으며 다가서려는 순간,

끼이이익— 쿵!

자신의 뒤쪽 신전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우로마시스와 타우로스피어가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이미 열린 문 사이로 아리와 메르시가 탈출하고 있었다.

“무슨...?!”
당황한 타우로마시스가 다시 막다른 곳을 돌아봤지만, 그곳에서 보이는 건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쉐도우 파트너’의 잔상뿐이었다.

“쉐도우 파트너! 이런 잔재주를!”
분노한 몬스터들은 다시 뒤돌아, 두 모험가가 사라진 방향으로 쫓아갔다.

헉, 헉...

아리와 메르시는 신전 밖으로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소란을 들었는지 와일드 카고들이 길목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쳇, 메르시! 잘 따라와야 해요!”

아리는 짧게 자세를 취한 뒤, 와일드 카고들의 사이를 파고들며 칼을 휘둘렀다.

“토네이도 스핀!”

칼의 회전 공격에 카고들은 순식간에 베어 나가고, 미처 베어내지 못한 카고들의 공격은 메르시의 방어막이 막아냈다.

“홀리 매직 쉘!”

메르시가 보호막을 펼쳐 와일드 카고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아리가 길을 뚫으며 그들은 신전의 정문을 향해 질주했다.

“신전 안에선 주문서가 안 통하니, 밖으로 나가면 통할 수도 있어요!”
앞장서 달리는 아리가 소리쳤다.

“저기! 정문이에요!”
정문이 보이자, 메르시도 아리를 따라 달려갔다. 그 순간

휘이잉— 쾅!

머리 위로 거대한 창이 날아가 천장의 종유석을 부수었고, 떨어진 파편이 정문을 막아버렸다.

“아아...”
절망에 빠져 있던 두 사람 뒤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어딜 그리 급히 가려는 거지?”
타우로마시스와 타우로스피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그 창은 타우로마시스가 던진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충고하지. 순순히 항복해라.”

그러나 아리와 메르시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전투 태세에 돌입한 그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어리석은... 그럼 자비는 끝이다!”

순간, 아리와 메르시의 머리 위에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곧 강렬한 번개가 떨어졌다.

“신성의 힘이여, 디바인 프로텍션!”

메르시가 손을 뻗자 황금빛 보호막이 형성되어 마법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곧바로 메르시는 적들을 향해 마법진을 펼쳤다.

“여신이시여, 어둠을 몰아낼 빛을! 샤이닝 레이!”

눈앞에 금빛 천사가 나타나 광휘의 섬광을 내리쬐었고, 타우로마시스와 다른 몬스터들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을 휘청거렸다.

“아리! 나를 따라와요!”

메르시는 아리의 손을 잡아 신전의 무너진 벽 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들은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그 끝은 높은 천장이 드리운 커다란 방, 하지만 출구가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하아... 하아...”
아리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제가 앞에서 막을게요. 메르시가 마법 지원을 해 주면서 적을 하나씩 처리해보죠.”
아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메르시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메르시는 아무 말도 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 메르시..? "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리가 다시 말문을 열려고 할 때, 메르시는 주문을 외웠다.

“미스틱 도어.”

“메르시?”
아리가 당황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가요, 아리. 여긴 제가 막을 테니, 이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도움을 청해요.”

“잠깐만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같이 도망치는 게 낫잖아요!”

그 말을 들은 메르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난 갈 수 없어요.”

“왜요? 왜 못 가는건데요!”

흥분한 아리에게 메르시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미스틱 도어는 가까운 마을 근처로 연결되는 포탈을 만드는 스킬이에요. 한 번 시전하면 10분 동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죠.”

“그건 나도 알아요!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요!”

“몬스터들도 탈 수 있어요.”

아리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 슬리피우드엔 상위 모험가가 거의 없어요. 우리를 포함해봐야 고작 5명 남짓이죠. 이 상황에서 몬스터들이 마을로 넘어가면 대참사가 벌어질 거예요. 그러니 누군가는 이곳에서 적들을 막아야해요.”

“그렇다면 차라리 제가 남겠어요! 다크사이트를 쓰면 어떻게든...!”

“억지부리지 말아요, 중요한 건 단순히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몬스터들이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거예요.”

“......”

“무엇보다 난 아직 이 스킬이 미숙해서, 포탈이 정확히 마을 안이 아닌 근처 어딘가에 열렸을 가능성이 커요. 그러니 넘어가자마자 최대한 빨리 마을에 달려가서 도움을 요청해야 해요. 이해돼요?”

아리는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메르시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도적은 기동력, 마법사는 수성(守城)의 핵심이에요. 서로 할 일이 다르잖아요?”

“하지만... 여긴 퇴로도, 성벽도 없잖아요. 어떻게 지키겠다는 거예요!”

“내가 바로 성벽이죠. 사람들을 지키는 사제가 성벽 아니면 뭐겠어요?”
메르시는 당당하게 말한 뒤, 뒤돌아섰다.

“어서 가요, 아리. 늦으면 도움을 요청 못 해요.”

“반드시... 반드시 구하러 올게요. 무리하지 말고 버텨야 해요.”

“물론이죠. 나도 아직 죽고 싶진 않으니까요.”

아리는 미스틱 도어 속으로 몸을 던졌다.
광장에 홀로 남은 메르시는,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사제답게... 그렇죠, 아저씨?”

돌아오지 않을 대답을 잠시 기다리던 그녀는 이내 지팡이를 단단히 쥐었다. 곧 무너지는 벽 사이로 몬스터들이 몰려올 기세였다.

우르르르— 쾅!

그 예상대로, 무너진 벽 틈으로 보라색 가죽의 와일드 카고 무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천사들이여! 이교도들에게 심판을!”

메르시가 주문을 외치자 몬스터들이 몰려 있는 바닥 위로 황금빛 마법진이 펼쳐졌다.
빛의 창과 신성한 날개가 형체를 이루어, 바닥 위의 카고들을 꿰뚫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몬스터들은 그 공격을 버티고 메르시에게 달려들었다.

“홀리 **우!”

신성한 화살이 날아들어, 육탄전을 준비하던 와일드 카고들의 머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그들은 메르시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쓰러져 갔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훨씬 강력한 두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우로마시스와 타우로스피어.
신전의 파수꾼이자 발록의 수호자가 들어섰다.

“한 명은 어디 간 거지?”
타우로마시스가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남의 친구에겐 관심 끄고 눈앞의 적이나 상대하시죠.”
메르시가 비아냥대듯 대꾸했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사제만 있으면 되거든.
네 놈을 이용해 지긋지긋한 속박의 저주를 끊고, 이 세계를 피로 물들이겠다!”

“누가 순순히 당할 거라 생각하나요!”

메르시는 다시 한 번 마법진을 펼쳤다.

“홀리 **우!”

신성한 화살이 타우로마시스를 향해 날아갔지만,

“흥!”

타우로마시스가 가볍게 창을 휘두르자 모두 소멸돼 버렸다.
놀란 메르시가 잠깐 멈칫하는 사이, 옆에 있던 타우로스피어가 창을 던졌다.

“호... 홀리 매직 쉘!”

가까스로 보호막을 펼쳤지만 충격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고, 메르시는 벽에 부딪혀 나가떨어졌다.

“으윽...”

신음을 흘리는 그녀에게 타우로마시스가 다가왔다.

“휴우... 여신교의 사제란 것들은 왜 이리 끈질긴지. 7년 전 그놈도 그렇고 쓸데없는 짓인거늘
어차피 네놈들이 뭘 해도 발록 님의 부활은 막지 못하니 말이다.”

그 말에 메르시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다시 말해봐.”

“뭐?”

“다시 말해보라고!”

메르시는 분노에 차서 타우로마시스를 향해 마법을 쏟아부었다.

“흥, 뭐냐 그건. ‘개죽음’이란 말에 화라도 난 거냐?
네 놈도 결국 별 의미 없는 저항을 하다가 끝날 뿐이지.”

“아저씨를...”

메르시의 눈에 분노가 일었다.

“아저씨를 모욕하지 마!”

그 순간 광장 곳곳에 신성한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제네시스!”

엄청난 광역 공격이 광장을 휩쓸어, 대부분의 와일드 카고가 일격에 쓰러졌다.
타우로마시스와 타우로스피어 역시 큰 피해를 입었지만,

“크윽... 대단한 재능이군. 추기경급 스킬까지 쓰다니.”
“하지만 아쉽게도 위력이 부족하군, 네 놈도 꽤 다친 것 같고.”

그 말대로, 메르시는 감당하기 힘든 스킬을 억지로 써서인지, 피를 토하며 힘겨워했다.

“쿨럭... 하아... 몬스터치곤 꽤 자상한데?”
메르시는 입가의 피를 닦았다.

타우로마시스는 다시 그녀를 제압하려 다가섰고, 바로 앞까지 왔을 때—

“너무... 방심하는 거 아닌가?”

메르시는 지팡이를 들어, 눈앞에 마법진을 펼쳤다.

“...엔젤레이”

신성한 빛의 화살이 나타나 타우로마시스를 정통으로 꿰뚫었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그 공격은 치명상을 주지 못했고, 타우로마시스는 그녀의 목덜미를 거칠게 움켜들었다.

“으윽...!”

“마력이 다 떨어진 어린 사제의 공격 따위, 얼마든지 버텨주지.”

“이제 끝이다!”

타우로마시스가 창을 높이 치켜들고, 메르시는 마지막 힘을 짜내며 주문을 외웠다.

“...에너지 볼트.”

나약한, 그리고 작은 에너지 구체가 타우로마시스의 얼굴에 닿았다.

“크하하핫! 마지막 발악이 겨우 초보 마법사나 쓰는 공격이냐?
좋다, 이제 끝내주마!”

스르릉-
그 순간, 타우로마시스는 이상함을 느꼈다. 사제의 마나가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히 회복된 기색이 있었다.

“설마... MP이터?”

에너지 볼트로 타우로마시스의 마력을 빼앗아, 극소량이나마 메르시의 마나를 보충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쳐도, 고작 스킬 한 번 쓸 정도의 마력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

타우로마시스가 코웃음을 치자, 메르시도 희미하게 웃었다.

“뭐냐니...”

“배운 대로 하는 거지”

그녀의 몸 주위에 밝은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타우로마시스는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건... 빅뱅?! 너도 죽게 된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

메르시는 쓰라린 미소를 지었다.

“아쉽게도, 배운 게 이것뿐이라.”

그녀의 말과 함께 신성한 폭발이 광장을 휩쓸었다.
타우로마시스와 타우로스피어는 엄청난 충격에 튕겨 나가고, 기둥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윽! 이 빌어먹을 사제 녀석이! 감히 신전을—!”

분노에 가득 차 달려드는 그들의 머리 위로 무너진 종유석이 떨어졌다.

“크어억!”

짧은 비명과 함께, 돌무더기에 깔려 움직임이 멎었다.

운 좋게도 메르시가 있던 곳은 기둥이 비스듬히 무너져 약간의 공간이 생겼다. 하지만, 그곳도 오래 버틸지 장담할 수 없었다.
유일한 탈출구였던 미스틱 도어는 붕괴의 충격으로 사라졌고, 그녀에게는 더 이상의 마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움을 직감한 메르시는 눈을 감고 과거를 떠올렸다.

작은 산골에서 행복하게 자랐던 시절. 몬스터에게 소중한 이를 잃었던 아픔.
한 사제를 만나 용서와 구원을 배웠고, 그 길을 이어받으려 노력했던 오늘까지의 삶.

자신은 과연 그의 길을 온전히 이었을까. 남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와... 그리고 부모님에게 떳떳할 수 있는 아이였을까.

하지만 답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혼자였으니까. 어느새 눈가를 따라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누구보다 성숙했지만, 메르시는 여전히 어린 아이였다.
세상을 여행하고 싶었고, 친구도 사귀고 싶었으며, 어른들처럼 자신 또한 누군가의 길을 이어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메르시는 낡은 수첩을 꺼내 맨 앞 페이지의 단풍잎을 바라보았다.
그 날, 요한이 건네주었던 단풍잎을 바라보며 그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모두 단풍의 의지를 잇는 모험가, 이어주고 이어받는 존재다.”

“이어주고, 이어받는다...”
메르시가 중얼거렸다.

“아저씨... 저는 올바르게 살았을까요?
당신의 삶을.. 당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어갔을까요...?
저는... 누군가의 축복이었을까요...?”

“보고 싶어요, 아저씨...”

곧 그녀를 지탱하던 기둥이 무너졌고, 신전 전체가 내려앉았다.
아리가 구조 요청을 받은 모험가들과 함께 그곳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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