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은 창작소설로, 검은마법사 저지 이후의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글쓴이라 메알못이라 설정이 이상할 수 있습니다. 검은마법사 이후 스토리와는 전혀 무관한 전개로 진행되는 점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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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마법사를 저지하고 2개월이 흘렀다.
그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고, 에르다로 흩어지기 직전의 그와 대면한 직후 나는 정신을 잃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5일 후인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오르카가 나를 전초기지로 보내주었다는 모양이다.
그 오르카가? 왜? 그 며칠 동료였다고 정이라도 들었던 건가?
하여튼 좋은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현재 누워 있는 곳은 병실, 주변을 돌아보니 아주 호화롭다. 창문에는 고등급 방호 마법이 걸려있으며 느껴지는 인기척으로 보아 방문 밖에는 경비들이 서 있는 것 같다.
고개를 숙여 내 몸을 보니 아주 가관이다. 별로 아프지는 않은데 붕대를 뭐 이리 칭칭 감아논거야?
팔 두 개는 마법이 새겨진 붕대에 칭칭 감겨 침대 위의 거치대에 고정되어 있고, 다리는 이불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예 움직이지 않는다.
달려 있기는 한데... 이거 문제 있는 건 아니겠지?
내 몸을 살펴보며 불안해하다가 문득 방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끼익-
올리가 수액 팩을 들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오다 나를 보고 기겁(?)하듯 소리쳤다.
"대적자님...? 대... 대적자님께서 일어나셨다!!"
얘는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대적자님!!!! 일어나셨습니까아아!!!!!!"
올리가 소리지른 탓에 병사들이 우르르 병실로 몰려 왔다.
"저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어흐흑! 목숨을 빚졌는데 감사 인사도 못 드릴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다행입니다....다행입니다...!"
다 좋은데... 귀청이 떨어질 것 같다. 이러다 몸도 아픈데 행가래 같은 거 하진 않겠지?
"아...하하 아이고... 아닙니다. 제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무사합니다. 다들 잘 지내셨습니까?"
이후 병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상황을 전해 들었다. 요약하자면 총 3가지가 되겠다.
1.검은 마법사 제압 이후 아케인 리버의 잔당들을 소탕하고 있다. 구심점을 잃었으니 일반 병력으로도 유의미한 차도를 보이고 있다고.
2.살아남은 유일한 군단장 윌을 감옥에 두고 심문하고 있다고 한다. 심문은 딱히 내 분야가 아니니 패스. 근데 오르카도 따지자면 군단장 아닌가?
3.본래 계획이었던 프렌즈 월드, 그란디스와의 강제 병합 속도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직 멈추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인즈의 말에 따르면 에르다 흐름의 관성 때문이라나 뭐라나.
이후 주치의가 와서 나를 붕대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다행히도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은 것은 신체 어딘가가 마비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거의 다 나아서 그런 것이었다.
다만 주치의는 이렇게 일러 주었다.
"한 달 간은 마나를 쓰시면 안 됩니다."
"네?"
내가 잘못 들었나?
"아케인 리버 돌파 자체도 강행군이었습니다. 검은 마법사와의 결전은 말할 것도 없구요. 이미 많이 무리하신 거 본인께서도 아실 겁니다. 오르카에게서 대적자님을 넘겨 받았을 땐 대적자님의 마나 회로가 반파(半破) 상태였습니다. 시그너스님께서 온갖 물자를 다 동원해서 고쳐주셨으니 이 정도 부작용에서 끝나는 겁니다. 제발 어기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아...쓰읍...."
마나를, 못, 쓴다고?
마나란 자고로, 나같이 전쟁터에서 굴러먹는 사람에게는 산소와 같은 것이다.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있어야 다양한 기술을 쓸 수 있고, 강인한 신체, 힘, 마력을 얻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마나 없는 나는 한동안 헤네시스 주민1과 비슷한 처지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마나와 별개로 체력 단련은 빡세게 해서 그래도 주민보단 강하겠지만. 단검이 주무기라 어차피 일부 기술들은 쓸 수 있지만!
힘이 빠진다... 내 스킬들 돌려줘요...
"아... 알...겠습니다."
주섬주섬-
"?"
"나인하트님께서 손수 제작하신 마나 구속구입니다. 반지의 형태입니다만 나인하트님의 마력 없이는 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 특별히 끼고 싶으신 손가락이 있으신가요?"
"..."
이거 원. 우리의 나인하트 님은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무 데나 끼워 주세요."
주치의가 물러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그너스가 병실로 들어왔다.
"대적자님...!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아...네. 감사합니다."
시큰둥한 내 표정에 시그너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이유를 알아낸 듯 표정을 굳혔다.
"대적자님... 그 반지. 빼지 마세요."
"아니 저는 아무 생각도 안했는데."
"아무튼 빼지 마세요. 그러다 정말 큰일납니다."
억울하다. 뺄 생각은 진짜 없었는데.
"후.. 그러면 다행이고요. 주치의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마나 회로 이외에는 거의 다 회복되셨다고 들었어요. 큰 일 해내시고 바로 이런 말씀 드리기 미안하지만, 임무가 있습니다. 해주실 수 있나요?"
"아... 뭐죠? 아시다시피 제가 지금 전력이 온전치가 않아서."
"물론 위험한 임무는 아닙니다. 임무 내용부터 말씀드리자면 프렌즈 월드로 다시 가주셔서 그쪽의 동향을 조사해 주셨음 해요."
프렌즈 월드...? 아까 병사들에게 들었던 내용 중에 있었다. 강제 병합이 아직 멈추지 않아서 조사를 요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전초기지에서는 대적자님이 가장 중요한 전력입니다. 검은 마법사가 사라졌어도 제른 다르모어는 아직 건재하고, 대적자님이 있는 곳으로 자객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메이플 월드를 중심으로 그란디스와 프렌즈 월드가 통합되고 있으므로 그 두 세계 사이의 거리가 멀고, 차원 이동 게이트를 두 번 타야 편도 이동이 가능하므로 프렌즈 월드에서 대적자님이 임무를 수행하시는게 안전하다는 것이 전초기지의, 저의 생각입니다."
들어보니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근거도 명확하고, 프렌즈 월드에서의 임무도 그란디스에서의 임무보단 내 전력을 덜 요하겠지.
"저는 그럼 프렌즈 월드로 넘어가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저번에 하던 것처럼 몬스터 청소라든지... 아니면 특정 인물을 주시하라든지 말입니다."
"대적자님. 혹시 트러블메이커를 기억하십니까?"
트러블메이커. 저번에 프렌즈 월드에서 퇴치했던 몬스터이다. 특정 인물들의 부정적 감정을 숙주삼아 자라나는 녀석들이다.
"트러블메이커를 만들었던 인물들을 주시해 주세요.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세계에서 유명한 아레다, 프란시스, 아카이럼, 데미안을 잘 봐주세요. 물론 저번처럼 몬스터도 나타나면 청소해 주셔야 합니다."
"뭐 그정도는... 어려울 것 없죠. 바로 준비하면 되나요?"
트러블메이커 그 녀석들, 아닌 게 아니라 엄청 약하다. 지난 방문으로부터 나는 엄청나게 성장했으니, 그 녀석들 정도는 한 입거리이지 않을까.
"임무의 공식적인 시작은 3일 후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공식적 표기일 뿐이니, 할 일이 있으시다면 그 후에 가셔도 좋고, 반대로 일찍 출발하셔도 문제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그너스는 이후 계속 미안해하다가 병실을 나갔다. 거사를 치루고 나서도 못 쉬게 해주는 것이 어지간히 미안한 모양이다. 나 진짜 괜찮은데.
어린애일 때부터 봐서 그런지 저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좀 딱하다. 그냥 조금 더 뻔뻔해져도 좋을 것 같다.
"자... 그럼 일어나 보실까!...아악!"
"..."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어이없게도 바닥을 굴렀다. 5일 동안 누워 있어서 그새 근육이 퇴화한 것 같은데, 마나도 못 쓰는 상황에서 괜히 더 서럽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전초기지에서 나온 후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다크로드였다.
"도적이 되고 싶은 자는 나.... 이거 유명인사가 오셨군. 이거, 존댓말을 해야 하나?"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시죠. 거짓말하시면 오래 못 삽니다."
"...넌 여전하구나."
"그럼요. 요즘 도장은 어떻게 잘 되가십니까?"
"말도 마라. 대적자께서 여기 출신이라는 거 듣고 사람들이 좀 몰려와야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좋은 겁니까?"
"좋아 보이나?"
"아뇨."
"하하. 마냥 나쁜 건 아니다."
이 양반, 조금 바뀐 거 같은데?
"말년에 후학 양성에 재미 좀 붙이신 겁니까? 이거 내 비중이 좀 있어 보이는데."
"건방진 녀석. 너보다 훨씬 예의 바르고 재능있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자리 반납할 각오나 하고 있도록."
"아~ 예예."
"...시답잖은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오늘은 무슨 일로 왔지?"
"시답잖은 이야기 하러 온 건데요?"
"..?"
"아니 제가, 봉인석 그거 타의적으로 받고 살아난 후부터, 정말이지 한 순간도 쉰 적이 없어요. 세계의 운명이니 대적자니, 나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고생을 했어요. 그러면서 잡무는 또 잡무대로 시킨다니까? 나 연합의 최중요 인물인데 갑판 청소를 일상처럼 했어요. 이거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군."
"그러니까! 큰 거 하나 끝낸 지금! 스승 되시는 재미없는 분과 이렇게 만나서 얘기 좀 하려고 온 거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가져온 요리와 술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다크로드는 놀란 듯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맛 없으면 넌 강제 퇴출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방금 좀 웃은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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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웨에에엑-
다크로드와 술을 먹은 어제, 나는 죽었다.
숙취로 말이다.
저 양반, 40도짜리 술을 물처럼 마시는 게 말이 돼?
나도 어디가서 털리진 않는데, 말 그대로 완패 해버렸다.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더 정진하거라. 제자가 바닥을 구르는 걸 보니 스승 된 자로서 마음이 아프다."
빌어먹을. 저 빈정대는 말투는 다시 생각해봐도 프로다. 어디서 연습한 거야?
"욱... 그쪽은 간이 뭐 기계로 되어 있습니까?"
그래도 어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여태까지 어떤 고생을 했고, 이제 어디로 갈 것이고, 이제 목표가 제른 다르모어가 되었다는 것까지.
다크로드는 내 이야기를 경청했고, 조언을 타이밍 좋게 이야기해줬다.
그래도 스승이라는 건가.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심 그가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욱...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 가서도 외롭다고 울지 말고 도장 잘 운영하십쇼."
"입에 묻은 거나 닦고 말하거라. 잘 가라."
"수고하세요."
"그래."
그 다음으로는 메이플 아일랜드에 오랜만에 방문했다.
"어!...어어! 이게 누구신가!"
루카스 장로님이 환대하며 다가오셨다.
"그렇게 놀라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장로님. 그래도 오랜만에 뵈어 좋네요."
"다들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그야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구해낸, 영웅님 아닌가!"
"아하하... 제가 그렇게 유명한가요?"
"말하면 입이 아프지! 이걸 보게나!"
장로님께선 자택 앞 우체통에서 책을 한 권 집어 들더니 나에게 보여 주셨다.
'대적자. 그 영웅의 일대기:서막.'
책을 넘겨보니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 같은 형식으로 내 일대기의 초반 부분을 서술해 놓았다. 영웅 미화를 너무 시켜서 오그라듦이 가히 예술적이었다.
"...제가 이랬습니까?"
"그럼~! 난 오히려 책이 표현을 자네를 다 담지 못했다고 평하고 싶네!"
장로님도 기억 미화가 되신 모양이다. 큰일인걸...
"그건 그렇고... 혹시 제 동료들이 지금 여기 있을까요?"
"슈가, 테스, 올리비아, 론도 4명 전부 자네가 온다고 해서 이곳에 있네! 난 오늘 자택을 비우니 오랜만에 이야기 나누게!"
"감사합니다. 장로님."
"아닐세!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장로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걸어가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문득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적이 생각났다.
단풍나무 아래에서 눈을 뜨고 슈가를 만난 것부터 메이플 월드를 떠난 것, 검은 마법사의 봉인을 풀어버린 것, 블랙헤븐에서 겔리메르의 **를 저지한 것, 아케인리버에서 미래의 나에게 도움을 받은 것...
회상이 검은 마법사와의 결전까지 닿자 장로님 문 앞에 서 있었다. 나 그래도 올해 20살인데, 벌써 주책이 느는 건가?
테네브리스에서 잠시 같은 방에 있었던 하인즈의 지루한 회상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아...늙기싫다.
"오우, 이거 좀 맛있는데."
"장로님 집밥 이런거 드시는 거야? 맛있네."
"먹을 만 해."
"저...얘들아... 유 오는 걸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먼저 먹으면... 그... 좀 그렇지 않아...?"
"이 맛있는 걸 앞에 두고 얌전히 기다리라고? 어림도 없지~ 너도 먹으면 공범인거지? 자 입 벌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저 기운 넘치는 것들은 여전하네.
나는 습관처럼 문을 쾅 열려다가 장로님의 집인 걸 깨닫고 문을 손으로 부드럽게 밀었다.
"롱 타임 노 씨다 이 녀석들아! 잘 지냈냐?"
문을 열기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열어보니까 방이 꽤나 넓었다. 방은 세로가 굉장히 긴 직사각형 모양이었고, 바닥에는 비싸보이는 나무가 광을 내며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었다.
방의 중앙에는 난로와 연결된 5인용 원형 식탁이 있었고, 4자리를 차지한 녀석들이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오! 왔냐! 오늘 여정 썰 좀 풀어줘!"
"오랜만! 야야, 너 시그너스님 가까이서 봤어? 시그너스님 예쁘시지? 연합군사령관 옷 입으시니까 멀리서 봐도 빛이 막...!"
"...안녕. 오랜만이야. 음... 부쩍 유명해진 거 같아서 어색하네. 하여튼 반갑다."
"ㅇ...유. 안녕...? 오랜만이야! 이렇게 건강히 보니까 기뻐."
하하. 한결같은 녀석들 같으니.
론도 쟤는 왜 낯을 다시 가려?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친해졌는데. 오늘 이야기 많이 나눠야겠다.
"너희는 참 한결같아 좋다. 이래야 내 친구들이지. 저 먹다 남은 뼈다귀 같은 것들 치우고 리필 되냐?"
나는 달팽이요리, 돼지갈비 였던 것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오늘 장로님이 쏜다고 하셨어! 아주 거덜을 내버리자고!"
올리비아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공짜 밥만큼 맛있는게 없긴 하지.
"술은? 나 오기 전에 술 마셨냐?"
"에이~그래도 그건 아니지. 이제 다 왔으니까 술도 좀 달라고 해야지!"
"왠일로 맘에 드는 짓을 하네."
"칭찬 고마워!"
테스가 순수하게 받아치며 식탁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띵동-
"뭐 주문할 거 있으세요?"
문을 열고 집사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물었다.
"여기 돼지고기볶음 2개랑 비빔국수 2개, 버섯칼국수 1개랑 해파리냉채 1개 주세요! 술은 황혼이슬로 10병 주세요."
남자가 문을 닫은 뒤, 이게 다 공짜라고 좋아하는 올리비아를 뒤로 하고 론도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어. 나야 뭐, 너 아케인리버에 있을 때 시간의 신전에서 경비를 섰었어."
"오... 생명수당 달달했겠네?"
"맞긴 해. 그래도 귀 감추는 마법 스크롤 받으려면 조금 더 일해야 할 거 같아. 요즘 아케인리버 뒷정리 티오가 많이 남던데 거기나 지원할까 하고."
돈 얘기가 나오니까 그래도 곧잘 대화가 통한다. 생각했던 것만큼 나를 어색해하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야, 거의 다 됐잖아. 너 인생의 중대 목표 중 하나 아니였냐? 그거 사고 연락하면 형이 한 턱 쏠테니까 열심히 해라."
"오랜만에 봐도 넌 참 좋은 녀석이네. 고마워. 나중에 만나서 영수증 보고 후회하지 마."
론도와 말을 잘 주고 받다가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니 슈가가 안절부절 못하는 눈빛으로 날 보고 있다.
누가봐도 나랑 대화하고 싶은데 론도랑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평소같으면 일부러 길게 대화를 끌어서 반응을 봤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이니까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연락처 잘 기억하고 있지? 그걸로 부르면 이유 불문하고 형이 2시간이면 너 있는 곳으로 간다. 슈가? 너는 잘 지냈어?"
"아..! 응.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
"다른 애들 텐션이 말도 안되는데, 너가 고생이 많아."
"아냐..! 다들 좋은 친구들인걸.. 내심 다들 너랑 오늘 만나는 거 기대하고 있었을거야."
예나 지금이나 말을 참 예쁘게 한다. 아이구 이뻐.
"정말 너밖에 없다... 메이플 아일랜드는 요즘 어때?"
"이 이상 활기찰 수가 없어. 다들 너 얘기하고 웃고... 마을이 너무 밝아졌어, 헤헤."
"그거 다행이네. 오늘 밤은 기니까 많이 얘기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자."
"좋아!"
슈가와 대화를 마치려는데, 문 틈새로 황홀한 냄새가 들어왔다. 요리 냄새인 거 같은데, 침이 저절로 꿀떡꿀떡 넘어갔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진수성찬이 카트에 담겨 들어왔다. 음식의 신이 있다면 신도들이 이런 은총을 받지 않을까.
"야호!"
올리비아가 환호성을 질렀고, 테스는 술을 보며 뜨악하고 입을 벌렸다.
"황혼이슬이 아니라 엘릭서? 그것도 1200년산?"
술에 일가견이 없는 나지만 그래도 엘릭서, 그것도 1200년이라니. 눈이 홱하고 돌아가 술에 고정됐다.
"테스, 오늘 마시고 죽어보자고."
"그럼.흐흐"
술자리는 정말 재미있었다.
요리도 일품이었지만, 나오는 술들이 하나같이 같은 무게의 보석보다 비쌌다. 장로님, 미안합니다...
"여정! 이야기! 해줘!"
그새 취해서 볼이 발그랗게 상기된 올리비아가 투정을 부렸다.
"좋지. 어디부터?"
나는 내 일대기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회상을 이미 한 내용이라 더 실감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거기서 시그너스가 내 손을 딱 잡고! '대적자님.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라더라!"
"와 이 부러운 놈. 나같으면 그날 손 안씻었다."
"시그너스님이 가까이...? 그것도 손을...? 넌 안되겠다. 술 더 마셔. 쭉. 그렇지."
"타나가 눈을 꼭 감고 이러더라. '도와줘, 쟝...' "
"너무 슬퍼, 흐에에엥...히끅..."
"...훌쩍."
...
나는 참 많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고, 4명은 술에 취해서도 경청하며 아주 만족스러운 리액션을 보여줬다.
나도 좀 취했는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4명 전원 전멸. 해가 동쪽 산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다크로드에 비하면 뭐... 애기네 애기! 더 정진해라 나약한 아이들아!"
나는 책상에 엎어져 있는 4명을 각각의 침대로 옮기고 1층 거실로 나왔다. 거실 의자에 장로님이 새하얗게 질려 기대어 계셨다.
"이게 다 얼마야..."
어제 먹은 값이 말도 안되게 나왔나 보다. 하긴, 요리나 술이나 연합 VIP로 대접받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
"장로님, 이걸로..."
나는 로비하듯 연합 발행 수표를 장로님께 찔러 드렸다.
"아, 일어났는가? 이건...?"
"제 작은 성의의 표시입니다... 는 장난이고.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장소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 있었습니다."
"아아...고맙네..."
나는 장로님의 자택에서 나와 마스크를 쓰고 출항장으로 갔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으면 귀찮단 말이지.
"리스항구행 하나 주세요. 지금 막 출발하려는 걸로."
"네. 500메소 되시겠습니다."
워낙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나는 승선 후 갑판 중앙 의자 중 하나에 앉아서 챙겨나온 임무 브리핑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임무는 모두 1급 기밀이라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읽으면 나인하트가 뒷목을 잡겠지만... 그래서 나인하트가 뭘 할 수 있는데?
문서에는 그쪽 세계의 아레다, 프란시스, 아카이럼, 데미안의 현황, 개인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들 모두 여전히 가족이나 직장, 학교로 신수국제학교와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본명 그대로 '유'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그쪽 세계의 연락책과 만나면 교복과 학생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서에 적힌 목표는 신수국제고 반경 1km 내에서의 트러블메이커를 비롯한 모든 '이상현상'과 '몬스터'의 진압. 이거, 난이도는 쉽지만 노가다의 연속일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뿌-뿌-
배가 리스항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이후 문서의 내용을 한번 더 곱씹으며 택시를 불러 헤네시스의 장롱이 떨어진 집으로 향했다.
"아...누구십니...헉! 수고하십니다!"
피곤한 행색의 병사가 나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돌발 감사라도 나온 줄 아는건가. 나는 괜찮다고 손짓하고 게이트 앞으로 걸어갔다.
"대적자님. 안녕하세요."
릴리가 나를 맞이했다.
"어. 오랜만. 이번에도 고양이로 따라오는 건가?"
"아니요. 저번에 제가 따라갔던 이유는 저쪽 세계의 상식을 알려드리기 위함이었어요. 이제는 알 거 다 아시잖아요? 무력이야 제가 도와드릴 건 없어서..."
"물론 기억을 다루어야 할 일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이걸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릴리가 강낭콩 모양의 기계를 건냈다. 이거 뭐지? 마도 공학 장치?
"에어팟이라는 건데, 저쪽 세계의 디자인을 참고해봤어요. 물론 기능은 저와의 연락밖에 없고 실제 상품과는 다릅니다. 이래봐도 차원 간 소통 기계라 엄청 개발이 어려웠어요. 소중히 다뤄주시면 좋겠네요."
"확인했어. 바로 가면 되지?"
"네. 수고해주세요. 부상이 깊다고 들었는데, 무리는 하지 마시구요."
"다 나았어. 그럼, 다녀올게."
나는 이내 워프 포탈 속으로 몸을 던졌다.
임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