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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소설] 에반 키우기 2 (3)

캐릭터 아이콘PEYLSW

본 유저수1,297

작성 시간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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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엘프들은 하늘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날갯짓하며 날아오는 게 한 떼거지 나비 같기도 하고, 웅장한 대열을 이루며 다가오는 것이 마치 철새들의 비행 같기도 했다. 점점 다가오며 그 대열이 점점 넓어지고 중간중간 함께 떠오던 엘프 비공정들도 자리를 잡아갔다.

 

아니 근데 도대체 어떻게 엘프가 실존하는 거야?!

 

 

/ / / / /

 

 

빅토리아 아일랜드 어딘가 숨겨진 도시에서 살았었다던 엘프. 하지만 엘프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엘프란 소설이나 벽화에나 나오는 종족이었지 단 한 번도 실물로 본 적이 없었다.

 

근데 아무런 장비 없이, 얇은 날개에도 불구하고 저렇게나 안정적으로 비행하는 모습은 엘프가 틀림없었다. 생김새와 입고 있는 옷가지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습과 완전히 일치했다.

 

그 광경은 말 그대로 비현실적이었다. 동물원에 갔는데 유니콘을 봤다고 생각해봐라. 두 눈을 믿을 수 있겠나? 가만이제보니 저 엘프 군대. 중간중간에 유니콘을 타고 날아다니는 엘프들도 있는데?!

 

그때부터 이게 전부 꿈이 아닌가 하는 발상을 시작했다. 내가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 벗어난 것도, 블랙윙에 가입한 것도, 그리고 저 엘프인지 뭐인지 모를 희한한 생명체들을 목격한 것도.

 

하지만 모든 건 꿈이 아니었다. 잠시 후 수풀에, 주택에 숨겨져 있던 포구가 고개를 치들었다. 그다음에는 포성이 들렸다. 그것은 소리로 전해진다기 보다는 강한 충격파로 몰려왔다. 포들이 일제히 발사되자 양 볼이 얼얼해질 정도였다. 귀에는 퍽 하는 짧은 소음만 들리고 그다음부터는 기나긴 이명이 이어졌다.

 

하늘로 올라가던 탄환은 엘프들이 위치한 고도쯤에서 폭발했다. 그 폭발에 주변을 날고 있던 엘프들은 맥없이 떨어진다.

 

내가 뭘 본거지

 

두 눈을 믿을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콘크리트 진지 밖으로 내밀었던 머리를 다시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밖을 살피기 위해 있는 그 두 뼘짜리 틈에서 가능한 멀어졌다. 여전히 포성은 끝나지 않았다. 날아오르는 포탄 외에도 형형색색의 투사체가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날아다녔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싫어진 나는 벽면에 딱 달라붙어 딴 곳을 바라봤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미르.”

 

응 마스터.”

 

왠지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 누가 날 감시한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초소 안에 나와 미르뿐이다.

 

난 미르에게 말했다.

 

나가자.”

 

?”

 

나가자고.”

 

당장 초소의 문을 열고 뛰쳐나가도 딱히 붙잡을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문을 열고 초소 밖으로 나왔다. 복도를 따라 뛰어 내려갔다.

 

근데 길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초소들을 연결하는 복도는 거미줄처럼 복잡했다. 벨라의 안내를 믿고 정신없이 뛰어왔던 지라 어떻게 다시 지하로 돌아가는지 모르겠었다. 벨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누구라도 붙잡아서 물어보고 싶은데 지금 복도는 텅 비어있다.

 

이대로 계속 헤매다가는 더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될 것 같았다. 그때는 벨라가 날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복도 한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가만히 있었다.

 

그곳에서 몇 분 정도를 기다렸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포성이 잦아들었다. 복도 밖으로 섬광이나 하는 것들도 사라졌다. 뭔가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다.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숨을 가다듬었다. 벨라나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길 바라며 계속 기다렸다.

 

그리고 정말로 어떤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여섯 명? 아니면 한 10명 정도?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었다. 토끼 인간이나 안드로이드는 없는, 순수 인간으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그들은 무전기를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 앞을 지나갔다.

 

지나가던 그들은 나를 발견했다.

 

자네는누구지?”

 

그들은 그냥 지나칠 만도 했다. 하지만 내 옆을 날고 있는 미르를 보자 그들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와 미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날 도와줄 만한 사람이 나타났지만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얼어있자 어느 남성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입고 있는 조끼에는 탄창 4개가 꽂혀 있고 한 손에는 소총을 쥐었다. 다른 한 손을 내게 뻗어 내 옷에 달린 작은 계급장과 이름표를 확인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나는 그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가 나를 불렀다.

 

에반 소령.”

 

, .”

 

그는 이베흐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견장을 흘끔 보니 3개의 별이 박혀있었다. 몸은 언뜻 날씬해 보이지만 내게 뻗은 손과 그 뒤로 이어지는 팔뚝을 볼 때 상당히 단련된 사람이었다. 나보다 살짝 큰 키에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그는 곧바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이미 상공에 엘프들이 식별되었는데. 왜 영관급 장교가 복도를 돌아다니나.”

 

방금 엘프들이라고 말했다. 역시 엘프였구나.

 

근데 이거 이렇게 돼버리면. 나 지금 혼나는 건가.

 

…”

 

내가 뻣뻣하게 굳어있다는 걸 그도 알아챘다. 그러자 그는 조금 풀어진, 약간의 미소를 내비치며 말을 이었다.

 

아냐. 난 훈계하려는 게 아니야. 이기기 위해서라면 때때로는 규칙이 어겨지기도 하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무장까지 내버려 둔 상태로 급히 갈 곳이 있던 건가.”

 

“……”

 

갈 곳, 갈 곳이라. 정확하게는 그냥 길을 잃은 상황이었던 거지.

 

근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그의 눈을 바라본 채로 어버버거렸다.

 

나와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곧바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자리를 이탈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나 본데. 맞나?”

 

, 그렇습니다.”

 

근무지 이탈은 탈영에 해당하는 범죄인데, 이것도 알고 있나?”

 

범죄? 범죄라니. 어디까지 가버리는 거야.

 

차마 그 질문에는 맞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점점 더 궁지로 몰리며 이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 모든 게 깔끔하게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에반 소령.”

 

익숙한 목소리에 곧장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이베흐가 기적처럼 서 있었다. 사실 기적이라기보다는, 나를 데리러 온 이베흐가 내가 초소에서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진지 이곳저곳을 뒤지던 중이었다.

 

제복을 입고 황금빛 견장을 찬 이베흐가 홀로 걸어오고 있었다.

 

방금까지 내게 따지듯 질문하던 남자는 이베흐를 발견하고 경례했다. 그의 주변에 있던 군인들은 곧은 자세를 유지하며 이베흐를 응시했다.

 

이베흐는 특유의 시원한 분위기를 뿜으며 다가왔다.

 

아하하, 별일 아니니까 걱정 말게. 내가 데려온 장교인데, 아직 근무 내용 숙달이 부족한 것뿐이니까.”

 

다행이다. 난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신참이다. 그런 나의 실수라면 누구든 이해해 줄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 서 있는 이 남자는 날 이해해 주지 않았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영관급 장교의 위치 이탈은 있을 수 없습니다. 병사들의 반발이 심해질 것입니다.”

 

아하하. 황 중장.”

 

황 중장. 이베흐가 그를 황 중장이라고 불렸다. 아마 이름에 이라는 글자가 들어간다는 뜻이겠지.

 

에반 소령은 내가 부대에 데려온 인사이니만큼 내가 직접 통제하지. 에반 소령에겐 훨씬 중요한 별도의 임무가 있어.”

 

이베흐는 미르를 가리키며 내용을 덧붙였다.

 

저기 저자를 따라다니는 드래곤도 보라고. 내가 그를 괜히 이곳에 데려왔겠나?”

 

하지만 황 중장은 표정을 피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고 어조로 말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장교를 파견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구두 명령만으로 진행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으음…”

 

황 중장은 이베흐와 눈을 맞추었다. 이베흐도 덩치가 큰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황 중장도 전혀 왜소해 보이지 않았다.

 

이베흐는 잠시 고민하더니 주변에 있는 다른 군인들의 안색을 살폈다. 전부 인간군인들. 누구 하나 특별한 표정을 짓지 않고 시선 15도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베흐는 그런 무표정 속에서도 무언가를 느낀 건가. 한 번 더 너그러운 미소를 보이며 황 중장에게 말했다.

 

미리 설명해주지 못해 미안하군. 하지만 사안들이 위중한 만큼 말을 아낄 수밖에 없지 않나. 부디 다른 병사들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

 

사유서는 오늘까지 준비하도록 하지.”

 

그럼 알겠습니다.”

 

황 중장은 다시 한번 이베흐에게 경례를 했다. 황 중장이 먼저 몸을 돌리고 발걸음을 띄었다. 그러자 다른 군인들도 조용히 그를 뒤따랐다. 이베흐는 그런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충분히 멀어졌다 싶을 때쯤 나를 돌아봤다.

 

왜 이런 곳에 계셨습니까. 따라오시죠.”

 

네넵.”

 

난 이 이질적인 곳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난 이베흐의 뒤에 딱 붙었고, 이베흐는 또 나와 미르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 / / / /

 

 

거미줄같이 뻗은 지하 복도를 이리저리 통과해 어느 장소에 도착했다. 우린 어느새 지하를 빠져나와, 창밖으로 구름이 보이는 곳에 있었다. 넓은 운동장과 주차장, 그리고 관공서 느낌이 나는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분주했다. 북적거리는 주변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던가. …딱 한 번 본 적 있던 것 같다. 커닝시티 지하철역. 지하철을 타러, 혹은 지하철에서 내리려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

 

그쯤에 멈춰 선 이베흐가 나를 돌아봤다.

 

에반 소령?”

 

?”

 

이제 좀 진정이 되셨습니까?”

 

이베흐는 시원하게 웃고 있었다.

 

, .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군요.”

 

이베흐를 만나니 속이 한결 안정됐다. 내 옆을 날고 있던 미르도 날갯짓이 좀 더 부드러워졌다.

 

이베흐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군더더기 없는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에반 님이 지금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

 

해줘야 할 일. 그 말을 듣자마자 신경이 곤두서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미르의 날갯짓도 덩달아 빨라졌다.

 

그게 뭐죠.”

 

이베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와 미르도 자연스럽게 그를 뒤따랐다. 이베흐는 설명을 이어갔다.

 

엘프들의 도발 때문에 일이 지체되었지만, 원래대로라면 블랙윙에 임관된 장교들은 블랙윙의 군주님을 알현해야 합니다.”

 

“…그런가요.”

 

물론 형식적인 절차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형식적인 절차도 되게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이베흐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방금 봤던 황 중장처럼 말이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말이 잘 통한다고 느낀 건지 이베흐의 얼굴빛이 편안해 보인다.

 

그럼 따라오세요. 지금 바로 군주님께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군주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시고, 그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안전한 방공호 안에서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이베흐는 나를 이끌고 그 건물을 빠져나왔다. 언덕 위 초소나 지하로 뻗은 복도가 아닌 진짜 지면을 밟게 되었다. 건물 인근은 도심이 아닌, 짧은 길이의 잡초가 자란 평원이었다. 해가 조금씩 져가는 게 보였지만 맨땅의 풀들에 반사되는 태양 빛은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리고 바로 앞에 나 있는 포장도로에 작은 군용차가 보였다. 군용차 앞에는 벨라가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벨라의 등 뒤에는 자기 상반신보다도 더 긴 총을 메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서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

 

나를 발견한 벨라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잘 있으셨습니까.”

 

시간상 서너 시간밖에 안 떨어지어 있었는데, 왜 이렇게 반가운 거냐.

 

…”

 

근데 벨라에게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몰골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날 떠날 때까지는 깨끗하던 전투복이 검붉은 얼룩으로 뒤덮혀 있었다. 검은 심하게 그을려 화약 냄새를 빨아드린 옷은 마치 독한 등유 냄새처럼 내 콧속을 찔렀다.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 기분 나쁜 냄새 속에는 좀 더 비릿하고 지저분한 무언가가 섞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피비린내였다.

 

괜찮아…?”

 

벨라의 오른쪽 뺨에는 흘렀다가 마른 핏자국이 분명했다. 전투복 말단에는 여전히 마르지 않은 핏물이 약간의 윤기를 띠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

 

뭘 그렇게 보십니까.”

 

“……”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자니 자연스럽게 얼마 점 일들을 떠올랐다.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던 그때. 그때도 벨라의 옷이 저렇게까지 더러워지지 않았다.

 

벨라와 고작 서너 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그 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아니야.”

 

“……”

 

벨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움직였다. 벨라가 이베흐를 바라보고 물었다.

 

에반 님이 전투 편성에 들어가 있는 건 뭔가 이상합니다.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난 이베흐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건 이미 해결됐어. 이제부터 난 전투에서 제외하겠대.”

 

다행이네요.”

 

다행. 다행이라. 그 말을 벨라한테서 듣자니 기분이 이상하다.

 

따라오시죠. 오르카 님께 안내하겠습니다.”

 

오르카…? 그게 블랙윙 군주의 이름인 건가.

 

“…알았어.”

 

차량 뒷좌석에 타고 보니 운전석에는 토끼 인간이 앉아 있었다. 이베흐는 조수석에, 벨라는 나와 같이 뒷좌석에 탑승했다. 미르는 내 품에 껴안긴 상태였다.

 

우리가 탄 차량은 작은 초원을 가로지르고 점점 더 내륙의 중심부를 향해가는 것 같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빽빽하고 높은 빌딩들이 나타났다. 저게 도대체 몇 층이야. 5? 8?

 

그와 함께 흉악하게 생긴 장갑차나 시커먼 금속으로 이루어진, 빌딩만큼 거대한 산업 장비들도 많아졌다. 저 장비는 뭐지. 유리 실린더 안에 금속 피스톤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대형 포션 제조기인가?

 

이런 질문에 있을 때는그나마 벨라가 대답을 잘해주지.

 

나는 옆자리에 앉아 있을 벨라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벨라는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벨라는 잠에 들어있었다.

 

바로 옆에 큼지막한 저격 소총을 끌어안은 두 손은 힘이 풀려있었다. 차가 방향을 틀 때마다 몸과 머리카락이 조금씩 양옆으로 흔들렸다.

 

근데방금 전부터 무언가가 날리고 있다. 검은 실선 같은 게 벨라 주변을 아른거렸다. 내 눈에 뭐가 들어갔나 싶어서 눈을 비벼 봤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손을 뻗어 떠다니는 실선 하나를 조심스럽게 잡아보았다.

 

설마 이거, 머리카락?

 

자세히 보니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벨라의 머리카락이 떨어지고 있었다. 벨라의 머리 옆통수가 불에 그을린 듯 망가진 걸 이제야 알아챘다. 타버린 머리카락이 뽑혀 나오던 것이다.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

 

절대 깨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난 입을 꾹 닫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조용히 앉아 있으려니 그러는 걸까. 나도 조금씩 잠이 오기 시작했다. 왠지 졸면 안 될 거 같은데, 특히 앞에 앉아 있는 이베흐님에게 예의가 없는 거 같은데, 벨라는 고생한 것 같지만 나처럼 아무것도 안 한 놈이 잠이나 자도 되는 걸까. 하지만 너무 많은 일을 한 번에 겪었던 건지 졸음을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참아야지.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참아야

 

아야

 

다 왔습니다.”

 

?!”

 

뭐지. 잠들었나.

 

잠들었던 것 같다. 주변 풍경이 극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높은 빌딩들은 사라졌고 대신 거대한 석조 광장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회색빛 석재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로가 놓여있고 그것을 둘러싸는 우아한 곡선이 광장의 테두리를 표시했다. 테두리 안쪽으로는 다른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우리가 타고 있는 차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2 명 좋아요 취소
질문자 캐릭터 아이콘PEYLSW Lv. 10 크로아

댓글1

  • 캐릭터 아이콘안변하는실력 2023.12.12 오후 06:11:49

    우우우우우ㅜ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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